“재벌하고 ‘대타협’하자? 재벌이 바보냐”
[인터뷰] 홍종학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10년 전 재벌 감시·감독하던 조선일보, 지금은…”
롯데그룹 사태는 한국재벌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총수의 지시서를 두고 아들 간에 이전투구가 벌어지는 전근대적 경영, 그리고 이를 가능하게 한 416개의 순환출자 구조가 대표 사례다. 롯데사태는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다시 부각시켰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새누리당에 대선 때 제시한 재벌개혁 및 경제민주화 공약을 다시 추진하자고 제안했다. 미디어오늘이 지난 13일 새정치연합의 경제민주화 전문가, 홍종학 의원을 만나 재벌개혁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홍 의원은 롯데 사태에 대해 “하도 오랫동안 이런 행태를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놀랄 일은 아니었다”며 “이번 일은 한국경제의 구조적인 문제다. 롯데사태에서 드러난 구조적인 문제 때문에 한국경제가 위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성장동력을 찾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언론은 롯데사태를 ‘왕자의 난’ ‘궁중쿠데타’라 표현했다. 그만큼 롯데일가의 경영은 전근대적 총수경영에 해당했다. 홍 의원은 “재벌의 일반적인 경영행태”라며 “현대가 10조를 들여 강남 땅투기를 하고 삼성이 말도 안 되는 합병을 하는데도 전혀 견제가 안 된다”고 지적했다.
홍 의원은 “왕조체제가 합리적이었다면 전 세계는 여전히 왕조체제일 것이다. 그러나 모자란 왕이 판단을 잘못하면 왕조가 무너졌고, 따라서 단기적으로 왕조가 번성할 순 있으나 장기적으로는 어렵기에 지배구조를 민주적인 체제로 바꿨다”며 “기업도 마찬가지로 하나의 가문에 의존하는 게 맞느냐, 하나의 가문에 의존하다가는 왕조가 망한 것처럼 기업도 망할 것이기에 민주적인 지배구조로 바꾼 것”이라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또한 “기업의 법상 지배구조를 보면 삼권분립 등 국가의 지배구조를 그대로 쫓아가게 돼 있다. 의사결정구조가 상당히 민주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법적으로는 규정하고 있는데 한국의 재벌체제는 이를 근본적으로 훼손한다”고 밝혔다.
홍 의원은 이어 “선진국의 오너 기업들은 전문경영인을 쓰다 오너 중 능력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다시 경영을 맡기는 식이다. 포드가 그랬고, 마이크로소프트도 대주주가 물러났다”며 “그런데 한국만 전근대적인 체제를 유지하면서 오너리스크가 기업 전체의 리스크로 이어지고 있다. 오너리스크의 위험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체제”라고 덧붙였다.
총수경영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순환출자다. 롯데그룹은 416개의 복잡한 출자구조 고리를 가지고 있고, 이를 통해 2.5% 미만의 지분으로 기업 전체를 지배한다. 홍종학 의원은 “지금이라도 빨리 기존 순환출자를 해소해야 한다”며 순환출자 구조가 주식회사의 근본원리를 해치는 것이라 강조했다.
홍 의원은 “주식회사의 근본원리는 1주 1표로 유한책임제도다. 주식을 산 것만큼만 위험을 감수하며 회사가 망해도 투자한 것만큼만 손실을 입는다”며 “이에 주식회사는 위험한 사업을 감수하고 고수익을 낼 수 있어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발전시켰다. 한국은 법적으로 분명히 1주 1표제도 등 미국식 제도를 따라가지면 그럼에도 순환출자로 인해 주식회사 제도의 근본취지가 훼손되고 있다”고 밝혔다.
▲ 2014 롯데그룹 지배구조. 출처=장하성 <한국자본주의> | ||
홍 의원은 재벌체제로는 한국경제가 성장동력을 얻을 수 없다고 강조한다. 홍 의원은 “미국이 1920년대 대공황을 겪은 이유 중 하나가 재벌체제에 있다. 당시 미국 재벌들은 은행, 철강회사, 전력회사 모두를 소유하며 삼성보다 심한 문어발 경영을 하고 있었다”며 “그러나 대공황 이후 미국은 주식 1퍼센트만 가지고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인위적으로 재벌을 해체했고 그 결과 미국은 비약적 발전을 하게 됐다.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구글, 페이스북 등의 세계적 기업들은 이런 상황에서 탄생했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한국에서는 이런 기업들이 못 나온다. 재벌 때문에 그렇다”며 “중국만 해도 알리바바나 샤오미 같은 전문적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는 기업들이 있다. 재벌체제는 마피아처럼 동네를 지배하기엔 우수한 체제이지만 국제경제에서는 취약한 체제로, 한국 경제가 한 단계 도약하려면 이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대표적인 예가 자동차 분야다. 홍 의원은 “후발주자로서 중국은 전기자동차에 엄청난 투자를 한다. 기술적으로 한국보다 우위에 있으며, 차세대 자동차들이 쏟아져 나오는 순간 현대차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며 “다른 나라의 경우 대기업 외 다른 기업들이 차세대 자동차 개발에 나서지만 한국은 현대차 독점 체제라 불가능하다. 중소기업들이 ‘현대동물원’ 안에서 현대차에 다 엮여 있어 기술개발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재벌은 경제영역 외에 정치사회언론 등 한국사회 전반에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홍 의원은 “10년 전, 5년 전에 비해 언론의 재벌에 대한 감시감독 역할이 완전 수그러들었다”며 조선일보를 사례로 들었다. “조선일보가 예전에는 재벌에 대한 감시감독의 역할을 해줬는데 요즘은 그 기능이 흔들거리고 있다”는 것.
2005년 삼성X파일 사건을 최초 보도한 언론은 조선일보였다. 언론권력의 입장에서 경제권력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던 셈이다. 10년 뒤인 2015년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두고 조선일보는 다른 언론과 비슷하게 ‘합병은 국익’이라는 입장을 취하며 투기자본 엘리엇을 막아야한다고 주장했다.
관련기사 : <합병이 국익? 언론의 억지 이면, 최대 광고주 삼성의 영향력>
홍 의원은 “10년 전만 해도 기재부 관료들이 재벌을 하대했다. 지금은 재벌에 꼼짝을 못한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뒷배를 봐줄 수 있는 존재는 재벌 밖에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어 “정치권력도 마찬가지다. 과거 독재권력이 상위에서 재벌에게 뇌물을 받았다면, 지금의 정치권력은 재벌의 하위권력으로 재벌에 기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새누리당을 ‘친재벌 정당’으로 규정하며 재벌이 정치세력의 뒷배를 봐준다고 지적했다. 인사청문회할 때마다 공직자 후보자의 자식들이 재벌 기업에 들어가 있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홍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면세점 사업을 예로 들었다.
홍 의원은 “롯데와 신라 두 곳이 면세점시장 80%를 장악하고 있다. 2012년 경제민주화 논의 때 여야가 면세점을 중소기업에게 우선적으로 주자고 합의했다”며 “그런데 정부는 이를 지키지 않았다. 면세점은 정부가 결정권한을 쥐고 있다는 점에서 정치권력과 재벌의 전형적인 결탁 수단”이라고 비판했다.
재벌개혁을 위해 여러 가지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한국사회에는 참여연대 등 주주권 강화를 통해 재벌개혁을 이루자는 그룹이 있다. 총수의 전횡을 소액주주들이 견제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고 재벌그룹 간 후계구도는 지분이 적은 총수가 아니라 주주들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 8월 6일자 경향신문 1면 | ||
그러나 주주의 이기적인 결정이 사회 전체 이익과 배치될 수 있다는 점에서 주주권 강화 논리가 위험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주주의 뜻으로 공장을 폐쇄하고 노동자들을 내쫓은 하이디스나 대주주의 뜻대로 희망퇴직과 정리해고를 강행한 쌍용차가 대표사례다.
홍 의원은 “한국 앞에는 유럽형 대타협 모델과 미국식 ‘1주1표’ 모델이 놓여 있다. 전 세계적으로 효능이 인정된 제도는 두 가지”라며 “재벌들이 노동자의 경영참여를 인정하면 사회적 대타협으로 가는 것이고 용인할 수 없다면 미국식으로 가야한다”고 설명했다. 홍 의원은 또한 “미국식으로 가면 법대로 재벌을 엄단해야 한다. 나는 그 길로 가야한다고 생각한다”며 “롯데가 흔들리는 것처럼 지배구조가 취약한 재벌들은 법만 엄격하게 적용해도 해체될 수밖에 없다. 정상적인 정부가 들어서면 재벌들은 급격히 해체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주권 강화의 일환으로 국민연금이 의결권을 가지고 영향력을 행사해야한다는 주장도 있다. 국민연금이 국내주식시장에서 보유한 주식비중은 7%에 달하고, 주요 대기업의 주식을 5% 이상 보유하고 있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권한을 적극적으로 행사해 경영에 개입하자는 것이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국민연금 역할론’을 강조했다가 ‘신중하게 하자’고 한 발 물러섰다.
홍 의원은 이에 대해 “국민연금의 의결권 강화가 백퍼센트 정답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체제보다는 틀림없이 나을 것”이라며 “최소한 국민연금 가입자들의 목소리가 제대로 반영된다면 지금보다 진일보한 것이라 본다. 민주적으로든 법적으로든 국민연금의 권한 행사가 문제될 것은 없다”고 설명했다.
재벌과 타협을 하자는 주장도 있다. 장하준 등 일부 경제학자들은 재벌의 경영권 세습을 인정해주고 그 대신 고용 등 다른 것을 얻어내자고 말한다. 홍종학 의원은 이에 대해 “현실성 없는 주장”이라고 일축했다.
홍 의원은 “1930년대 스웨덴의 사례, 즉 재벌이 국가의 거버넌스 아래 들어오는 모델인데, 지금 재벌이 국가 아래로
들어오려 할까. 재벌이 바보냐”라며 “사회적 대타협 기구도 없고 재벌이 정치경제언론권력 등과 유착되어 있으므로 불가능한 이야기다.
정치권이 이를 주도했다간 자칫 재벌의 요구사항만 들어주게 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홍 의원은 이어 “정치적으로 무모한
주장으로 재벌이 노리고 있는 술수”라며 “장하준 그룹과 연결된 사람들을 보면 재벌들하고 연결되어 있다”고까지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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