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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일자리 프레임이 너무 강력했다”

“청년 일자리 프레임이 너무 강력했다”
[긴급토론회] 정부와 자본·언론이 합작한 거짓말… ‘청년 일자리’에서 ‘쉬운 해고’로 프레임 전환해야

일반해고 및 취업규칙 변경요건 완화를 골자로 하는 노사정합의가 이루어지면서 합의내용을 두고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진다. 하지만 야당 및 시민사회단체 및 노동계가 정부와 재계가 제시한 ‘노동개혁은 청년 일자리’ 프레임에 말렸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온다.

16일 오전 정의당 주최로 국회에서 열린 ‘9.13 노사정 합의의 문제점과 대응방안’ 토론회에서는 노동시장개혁을 둘러싼 프레임 싸움에서 노동계가 정부 및 재계에 밀렸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합의를 두고 한국노총을 두들겨패는데 내가 볼 땐 한국노총 위원장은 상당히 오래 버틴 편이다. 새누리당에 뭘 갖다 바치지 못해 안 달이 나있는 간부들에게 둘러쌓여 있는 상황에서 버틸 만큼 버틴 편”이라며 “오히려 ‘민주노총은 뭐했나’라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민주노총이 노사정위원회의 논의과정에 참여하고 있었으면 이 꼴이 낫겠나”라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또한 “새정치민주연합 뿐만 아니라 정의당을 포함한 야당이 보다 적극적이지 못한 면도 있었다”며 “한국노총이 복귀하라는 압박에 시달리는 과정에서 야당이 이러한 상황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노동개혁은 청년 일자리’라는 캐치프라이즈를 만들어 대국민 선전전을 펼쳤으나 노동계의 방어는 먹히지 않았다. 안진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정규직 대기업노동자에 대한 공격이 부당하다고 쉽게 비판한다. 하지만 청년들은 ‘임금피크제라도 해서 청년일자리 만들어야하지 않나’라고 생각한다”며 “청년고용대책으로 노동시간단축, 법인세인상, 청년고용할당제 등 여러 가지 대안이 제시됐지만 이것이 통과되지 않으니 청년들 입장에선 임금피크제라도 해서 일자리 늘리자는 절박한 외침이 설득력 있게 들리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 정부의 노동개혁 광고 한 장면.
 

안 처장은 “정부나 대자본, 일부 언론이 합작한 거짓말 공세에 못 이긴다. 그만큼 당사자들은 절박하기 때문”이라며 “그 격차를 극복하기 위해 노동계와 시민사회계가 얼마나 노력했는지 고민해야 한다. 분노와 절망의 핵심에 있는 청년층을 더 많이 만나고 대화하고 같이 싸웠어야 한다”고 말했다.

조성주 정의당 미래정치센터 소장은 “노동계에선 임금피크제에 대해 ‘아버지 임금 깎아서 자녀 일자리 만드냐’고 반박했다. 한 청년이 이 구호를 듣고 ‘우리 아버지는 아닌데’라고 하더라”며 “그 청년의 아버지는 정년연장 대상도 아닌 비정규직이고 늘 해고 위협에 시달리고 있어서 해당 사항이 아니라는 거다. 노동계의 반론이 안 먹힌다. 정부와 재계가 청년문제를 잘 치고 들어왔는데 대응하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밀렸다”고 진단했다.

정부여당은 ‘노동개혁이 청년일자리’라고 강조했으나 막상 노사정합의안에는 청년고용을 늘리는 내용은 부실하다는 비판이 많다. 김형탁 정의당 부대표(전 민주노총 부위원장)는 “(합의안에는) 청년고용을 확대하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있으나 이에 상응하는 기업의 의무는 없다”며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겠다고는 하지만 어떤 기준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이유로 정부가 내건 ‘청년일자리’ 프레임을 ‘쉬운 해고’ 프레임으로 전환시켜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이창근 민주노총 정책실장은 “이번 합의에 문제점이 많은데 무엇을 테마로 해서 대응할지 고민이 많다. 결국 ‘쉬운 해고’가 핵심”이라며 “미조직노동자들을 포함한 모든 국민이 고용불안에 휩싸일 수 있다는 점이 이번 노사정합의의 핵심이고 이를 부각해 국민들과 함께하는 투쟁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

  
▲ 고용노동부 노동개혁 추진 계획 광고
 

이 실장은 이어 “대응에서는 여론전에 주안점을 둘 필요가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청년에 올인해 성공했다”며 “노동계는 ‘쉬운 해고’를 더 강조해서 올인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김유선 연구원은 “이번 합의를 두고 모든 게 다 끝난 것처럼 비분강개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제부터 시작이다. 1차 관문 통과했을 뿐”이라며 “그간 정부는 노동개혁이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주는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이제 그 구체적인 내용이 드러났다.  앞으로 핵심은 여론을 누가 쥐느냐에 있다”고 지적했다.

김 연구원은 나아가 “그간 노동계가 청년 프레임에 밀렸다면 이제 합의안이 나오면서 해고 부분이 전면화됐다. 프레임을 바꿀 수 있는 상황”이라며 “해고는 민감한 부분이다. 97년 총파업 투쟁이 가능했던 것도 해고를 건드렸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노조가입 운동’을 펼치자는 제안도 나왔다. 정부는 노동개혁에 앞서 ‘정규직 과보호’를 주장하며 이번 노동개혁의 대상을 정규직 조직노동자로 삼았지만, 막상 이번 노사정합의가 실현되면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동자들이 더 큰 위협에 처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조직노동자들은 단체협약이라는 1차적 보호장치라도 있지만 그렇지 않는 절대다수의 미조직 노동자들은 해고 완화나 취업규칙 변경에 보호 장치 없이 바로 노출돼 버리기 때문이다.

안진걸 처장은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노조 가입하라고 했는데, 시민사회계와 노동계도 ‘노동조합 있으면 덜 당한다’며 아래로부터 노동조합을 만드는 캠페인을 해야하는 것 아닌가”라며 “노조 없는 사업장에 가서 청년단체들과 함께 ‘온 국민이 노조 가입하자’며 오바마 따라하기 운동을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유선 연구원은 “미국의 경우 80년대만 해도 노조에 대한 공세적 분위가가 형성돼 있었으나 이후 여러 실증분석을 통해 노조의 순기능(고용안정, 소득 증대 등)이 부각되면서 여론을 바꾸는 역할을 했다”며 “한국의 경우도 자료나 연구가 없는 건 아니지만 잘 활용이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중기 한신대학교 교수는 노동계가 단기적인 여론전보다 조직화에 주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교수는 “여론전을 하긴 해야하지만 여론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노조가 시민들한테 해를 끼친다는 담론을 20년 동안 만들어놨다”며 “플랜카드와 찌라시(전단지를 의미)로는 종편을 이길 수 없다”고 말했다. 노 교수는 “투쟁도 중요하고 여론전도 중요하지만 조직을 만들어 가야 한다. 자원이 밀리는 상황에서 노동계의 무기는 결국 조직”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