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부담스런 새누리당, 더 큰 이슈 터뜨린다
반대 여론 늘어나는데, 지도부는 청와대에 충성서약… "민생 챙기자", 이슈 돌려막기로 물타기 될까 |
국정교과서에 대한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새누리당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박근혜 정부가 지난 12일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처음 발표했을 때만 해도 찬반여론은 비등비등했다. 여권 일각에서는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보수층 결집으로 찬성측 여론이 강해질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예측은 빗나갔다.
한국갤럽이 10월 20일~22일 전국 성인 1010명을 상대로 여론조사한 결과 36%가 국정화에 찬성한다고 답했고 47%는 반대했다. 일주일 전인 10월 13일~15일 조사에서 찬반이 42% 동률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론의 무게 중심이 반대쪽으로 기울었다고 볼 수 있다. 지난 22일 리얼미터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국정화 반대가 52.7%로 찬성(41.7%)보다 11%p 높았다. 지난 2일 실시한 리얼미터 여론조사에서는 찬반응답이 각각 42.8%, 43.1%로 팽팽했다.
여권과 보수진영에서 출구전략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특히 수도권에서 반대여론이 높아지면서 수도권 의원들은 출구전략의 필요성을 더 절실히 느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김병준 동아일보 객원논설위원은 22일 칼럼 <국정화, 지금이라도 회군하라> 에서 “정부와 여야 모두 돌아가라.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공화국의 공화정신으로 돌아가라”며 “여러 색깔의 다양한 교과서들이 공정하게 경쟁하게 되고, 정부와 여야 또한 현실이라는 교과서를 잘 쓰기 위해 서로 경쟁하게 되는 길이 무엇인지 고민하라”고 밝혔다.
▲ 박근혜 대통령이 22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여야 지도부 회동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청와대 | ||
여당 지도부도 ‘회군’의 의사를 밝히고 있다. 원유철 새누리당 원내대표는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여야의 지나친 정치권의 개입은 역사교과서를 정치교과서로 만들 수 있는 우를 범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 봤다”며 “이제 정치권은 역사교과서 문제를 국사편찬위원회와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맡기고, 우리 국회는 민생의 현안을 처리하고 경제를 살리는데 총력을 다 해나가야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는 22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여야 원내대표 간의 5자 회동에서 비슷한 취지로 발언했다. 원유철 원내대표는 5자 회동 이후 브리핑 자리에서 “당 대표께서는 역사교과서는 국사편찬위와 역사학자를 비롯한 전문가에게 맡기고 국회는 민생을 살리고 경제 살리는데 집중해야 한다는 말씀을 하셨다”고 전했다.
새누리당은 이처럼 한편으로는 국정교과서 논란을 두고 정쟁을 하지 말자고 슬슬 한 발 빼려고 할 것이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민생’을 챙기자며 야당을 압박하려는 것처럼 보인다. 이장우 새누리당 대변인은 23일 브리핑에서 “지금 국회는 민생살리기 법안들을 바로 눈앞에 두고서도 무기력하게 손을 놓고 있다. 같이 머리를 맞대야 할 국정 파트너가 국회가 아닌 거리로 뛰쳐나갔기 때문”이라며 “거리에 나가 피켓을 들고 서명운동을 벌이는 것은 경제 살기기가 아닌 경제 죽이기”라고 밝혔다.
5자 회담에서 ‘역사교과서는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말했던 김무성 대표는 22일 최고위원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따질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베어야하는데 녹록치 않은 현실이 녹아있는 발언으로 보인다.
하지만 ‘민생’을 통해 야당을 압박하는데도 한계가 있다. 노동개혁을 밀어붙이던 상황에서 난데없이 국정교과서 의제를 던진 쪽은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이기 때문이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19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에 서 “젊은 층이 지금 당장 취직할 데가 없는데 어른들이 뭐해 놓은 거냐. 당장 일자리 만들어내 우리 취직시켜야지 무슨 소리를 하고 있느냐 이런 얘기 하는 걸 들었다”며 “중도층에서 나라에 중요한 일이 그렇게 많은데 지금 뭐하고 있냐고 그렇게 질타하시는 분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정화는 멈출 수 없다. 이종걸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는 23일 열린 긴급의원총회에서 “국정교과서 문제는 변함없이 강경 드라이브 방식으로 추진해나갈 것은 느낌이 들었다. 그와 함께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정국 파탄을 향해서 치킨 게임까지 감수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듯 했다”며 “경제 민생의 발목을 잡는 것 같은 구도를 계속 부풀려가면서 이 구도를 유지할 수 있는 듯한 자신감을 보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결국 새누리당이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또 다른 이슈를 제기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새정치연합의 한 중진의원은 “새누리당 의원들이 ‘총선에서 밋밋하게 이길 것 같더니 변수가 생겼다’고 하더라.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압승을 못하면 국정교과서 동력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며 “김무성 대표와 박근혜 대통령이 세게 밀어붙였기에 뒤를 무를 방법은 없고, 이슈를 전환하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의원은 “박근혜 대통령의 경우 ‘불통’ 이미지가 강한데 시간이 갈수록 국정교과서 이슈가 독선적 국정운영을 한다는 이미지와 겹쳐서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슈전환을 안할 수가 없고, 국정화를 추진하면서도 더 큰 이슈로 이를 잠재우려고 할 것”이라며 “우리 당에서도 무엇으로 잠재우려 할지 지켜보고 대응을 준비해야한다”고 강조했다.
설사 이슈로 이슈를 덮는다 해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김무성 대표는 ‘전문가에게 맡기자’고 말했으나 어느 전문가에게 맡기느냐, 집필진 선정과정부터 정치적 논란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이 23일 교문위 전체회의에서 “논란의 핵심에 섰던 분들은 가급적 (집필진으로) 안 했으면 한다”고 말한 것도 이런 점을 의식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게다가 교과서가 나오는 시점이 2017년 초라 대선과 엮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남는 것은 야당의 대응이다. 야당은 애초에 예산안 심사 및 법안 심사 거부, 장외투쟁까지 예고했으나 국정화 여론이 7대
3으로 굳혀지면서 오히려 몸을 사리는 모양새다. 문재인 새정치연합 대표는 5자 회동 이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국정교과서를
중단시키기 위한 노력을 끝까지 해야겠지만 국회일정을 전면 중단한다든지, 예산심사를 거부한다든지 그런 생각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국정화를 둘러싼 여야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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