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일 일요일, 너무나도 한국인스럽게 부지런히 오전 6시부터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과 주변 성당들을 다니다 보니 자연스럽게 허기가 돌았다. 6시간 넘게 걸어 다녔는데 먹은 거라곤 아침에 먹은 카푸치노+코르넷또, 그리고 수플리 하나 뿐이었으니..
그래서 길거리에 주저앉아 식당을 찾기 시작했다. 이 대목에서 잠깐 이탈리아에서 식당 찾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야겠다.
이탈리아에는 크게 세 가지 종류의 식당이 있다. 첫 번째는 ‘리스토란떼(ristorante)’, 우리가 흔히 말하는 레스토랑이다. 전채요리부터 메인요리, 디저트까지 흔히 풀코스 메뉴가 갖춰져 있고 정장 입은 사람들이 나와서 안내하는 곳. 칼이나 포크 들고 고기나 생선 써는 격식 있는 식당. 당연히 이런 데는 가격이 꽤 나간다.
두 번째는 트라토리아(trattoria)다. 여긴 리스토란떼보다는 규모가 작거나 좀 더 캐쥬얼한 느낌의 식당이다. 전채요리나 디저트가 생략되는 경우도 있고 가정식에 가까운 식사들을 판다. 파스타나 스테이크가 부담스럽거나 현지인들이 일상에서 먹는 음식을 먹고 싶다면 트라토리아를 찾으면 좋다. (나도 여행 3일차에 트라토리아를 찾았다.)
세 번째는 오스테리아(osteria)다. 사실 명확하게 구별되지 않은데 굳이 비교하자면 트라토리아보다도 규모가 적고, 동네 식당 같은 느낌이다. 이른바 런치 세트 같은 메뉴도 있고, 식당과 카페/혹은 선술집을 합쳐놓은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다.
추천 외에 음식점을 찾는 유일한 방법은 검색뿐이다. 내가 사용한 방법은 간단한데, 구글 지도를 켜놓고 ‘migliore ristorante rome’라고 검색하는 것이다. ‘최고의 로마 식당’이란 뜻. 이렇게 구글에 치면 별점 순서대로 쭉 로마 식당이 뜬다.
찾는 식당 종류에 따라 ‘ristorante’를 ‘trattoria’나 ‘osteria’로 바꿔서 검색하면 된다. 피자를 먹고 싶다면 피자 전문점을 뜻하는 pizzaeria를 넣어 ‘migliore pizzeria rome’로 검색하시라. 만약 가까운 곳을 찾고 싶다면 ‘migliore ristorante vicino a me’(나에서 가까운 최고의 식당)라고 검색하면 구글지도가 알아서 계산해서 내 위치랑 가까운 순서대로 주르륵 뜬다.
물론 관광지이기에 별점조차 믿을 수 없어 몇 차례의 실패를 했지만, 그럴 때는 검색과 추천을 병행하는 수밖에 없다. 나 같은 경우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놓았기에 가이드들한테 식당 추천을 부탁해서 별점과 비교하며 식당을 골랐다. 확실한 건 로마는 내가 전에 갔던 시칠리아처럼 아무데나 들어가도 맛있는(마치 광주나 목포처럼) 그런 동네가 아니라는 것!
자, 그렇게 최첨단 검색을 통해 근처의 ‘Saltimbocca ristorante’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1~2시쯤이어서 한산했다. 일단 목이 말라서 이탈리아 식전주인 ‘아페롤 스프리츠’를 하나 시키고 메인 요리로 카르보나라를 시켰다. (이 집 파스타 실력 좀 보자!) 흔히 입맛을 돋우는 전채요리로 샐러드 같은 걸 시키기도 하는데 난 안 시켰다. 입맛을 돋울 필요가 없이 배가 존나게 고팠기 때문이다.
두 번째 메인 요리로 뭘 시킬까 고민하는 데 ‘pollo con peperoni’라는 메뉴가 있었다. 바로 옆에 ‘고대 로마 레시피’라고 써 있는데 이건 못 참지..
'조금 많지 않을까'하는 걱정이 무색하게 늘 하던 대로 두 접시를 설거지하자 가게 주인이 감탄하며 첼리로 만든 와인을 소주잔 같은 잔에 한 잔 따라주었다. (생각보다 독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 가면 크게 메뉴가 네 가지 종류로 나뉜다. 가장 먼저 먹는 것이 전채 요리를 뜻하는 안티파스토(antipasto). 낮에 돌아다니면서 먹은 로마식 주먹밥 수플리나 여러 샐러드(insalata) 종류, 아티초크(나중에 소개하겠음) 등으로 입맛을 돋울 수 있게 한다.
그 다음이 첫 번째 요리를 뜻하는 프리모 삐아또(primo piatto). 흔히 파스타나 리조토 같은 탄수화물 요리가 주를 이룬다. 그 다음이 두 번째 요리를 뜻하는 세콘도 삐아또(Secondo piatto)로 육류(카르네 carne)나 생선(페쉐 pesce) 같은 단백질 요리다. 그 다음이 디저트를 의미하는 돌체(dolce). 그래서 내가 먹은 것 중에 까르보나라는 프리모 삐아또, 로마식 닭고기는 세콘도 삐아또였던 것.
이런 코스 요리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물론 당연하게도 귀족 이상 계급에 해당되는 이야기다. 저녁 식사 때 ‘구스타티오(gustatio)’라는 이름의 전채 요리가 나왔고, 이어 ‘프리마 멘사(prima mensa)’, ‘세쿤다 멘사(secuda mensa)’가 제공됐다고 한다. 요즘과 차이가 있다면 당시의 ‘세쿤다 멘사’는 주로 디저트를 의미했다고 한다. (윤덕노, <음식으로 읽는 로마사> 참조)
이렇게 먹었는데 약 43유로가 나왔다. (한국 돈 6만원 가량). 식전주 스프리츠 6유로, 카르보나라 19유로, 닭고기 18.5유로. 하지만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관광지 근처라 별 기대 안 했음) 맛있었기에 괜찮았다. 여행은 역시 ‘맛있으면 0칼로리, 맛있으면 0원’이라는 마음가짐으로 다녀야 한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잠시 숙소에서 쉬려다 근처의 ‘산 루이지 데이 프란체시 성당’에 들르기로 계획을 변경했다. 이곳은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이탈리아 화가인 카라바조의 그림들을 볼 수 있는 성당이다. 호기롭게 카라바조를 만나러 갔으나 일욜 휴무...계획을 재재수정하여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두 시간 정도 쉬다가 다시 기운을 차리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 오후의 행선지는 숙소에서 도보로 약 13분 거리인 포폴로광장Piazza del Popolo이다. 포폴로광장은 테르미니역 입구가 생기기 전까지 로마의 입구라 불리던 곳이다.
포폴로광장은 중간에 오벨리스크가 하늘을 지를 기세로 솟아있고, 양 옆에 쌍둥이성당이 자리잡고 있다. 오른쪽이 ‘산타 마리아 데이 미라콜리’ 성당, 왼쪽이 ‘산타 마리아 인 몬테산토’ 성당이다. (내가 좌우를 바꿔서 아는 걸 수도 있다. 혹시 아는 분이 있다면 댓글로...)
이곳을 로마의 입구라 부르는 이유가 있다. 내가 왔던 테레베강 길로 이곳은 바티칸시국으로 이어져 있다. 그리고 남쪽 방향의 세 갈래 길 중 왼쪽 길 via del babuino는 그 유명한 스페인 광장으로, 가운데 길인 via del corso는 베네치아광장으로 연결된다. 이 길(corso)에서 중간으로 빠지면 트레비분수, 또 다른 길로 빠지면 어제 갔던 나보나 광장과 판테온 쪽으로 이어진다. 세 갈래 길 중 마지막 오른쪽 길 via del Ripetta는 평화의 제단으로 가는 길이다.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한다면, 로마의 모든 길은 포폴로광장으로 통하는 셈이다. 나아가 포폴로 광장 뒤쪽으로 올라가면 로마 최고의 노을 뷰를 볼 수 있는 핀초언덕으로 이어진다. 이 길은 스페인광장 쪽까지 이어지는데, 나는 까맣게 모른 채 며칠 뒤에 다른 길을 걷다가 이 뷰를 발견했다. (어? 여기 낯이 익은 곳인데? ㅇㅈㄹ하면서)
핀초언덕 넘어가는 길에는 무려 스핑크스가 로마의 여러 신들을 지키고 있다. 정중앙의 오벨리스크부터 스핑크스까지, 대체 이곳이 로마인가 이집트인가? (팩트 : 한 때 같은 나라였음) 햇빛과 그늘의 범위가 시시각각 변하는 탓에 그늘을 찾아 계속 움직이는 처지였다는 점도 이집트와 똑같았다.
이집트 같았던 포폴로 광장을 떠나 스페인광장으로 이동했다. 이곳에 스페인 대사관이 있어 스페인 광장으로 불리는데, 사람은 많지만 솔직히 별 거 없다. 여기 사람이 많은 이유는 로마의 휴일에 나왔던 명장면 때문이다. 별로 설명할 게 없기에 사진으로 대체하겠다.
다만 계단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경치는 볼 만하다. 물론...사람이 너무 많아 ‘계단반 사람반’이었지만 말이다. 사실 계단에 앉을 수도 없다. 문화재 보호를 위해서인지 경찰들이 돌아다니며 ‘일어나라’고 호루라기를 불기 때문이다. (그럴 거면 못 들어오게 하는 게 낫지 않나?)
사람 많은 스페인 광장을 거쳐 나는 숙제를 하러 트레비분수로 향했다. 로마 왔으면 트레비분수에 동전 한 번 던져야하지 않겠는가? 관광객 밀집으로 트레비분수에 세금 매긴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라니, 현실화될 경우 내 성정상 드러워서 다시 안 올 수도 있어서 이번엔 가보기로 했다.
트레비분수까지 가는 방법은 간단하다. 스페인광장에서 어딘가로 무리지어 향하는 사람들 중, 가장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따라가면 된다. 그렇게 도착한 트레비분수. 스페인광장은 별 거 아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람이 가득가득했다.
이탈리아어로 숫자 3을 ‘트레’라 한다. 그래서 흔히 트레비분수는 ‘삼거리분수’로 알려져 있는데, 정확히 길이 세 개 만난다기보다 여러 길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다고 이해하면 좋다. 신화 속 해신(海神) 트리톤 두 명이 이끄는 전차 위에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가 서 있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특히 죽치고 아예 앉아 있는 사람들이 많아서 정면에선 사진도 못 찍을 지경이었다.
스페인 광장~트레비분수로 가는 길 일대는 늘 이렇게 관광객들이 가득 차 있어서 참 정신없는 공간이다. 하지만 관광객들이 많다보니 자연스럽게 상권이 발달해 주변에 구경할 가게들이 많이 형성되어 있어 한 번쯤 구경하기도 나쁘지 않다.
점심을 든든하게 먹은 탓에 저녁은 길거리 파스타로 때우기로 했다. 티라미수 가게인 폼피 바로 옆에 파스타 테이크아웃전문점이 있다. 가격은 5유로고 메뉴는 pork 혹은 unpork 딱 두 개만 있다.
스페인광장부터 트레비분수까지, 참 정신없는 곳이지만 괜찮다. 이곳에선 길을 잃어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다시 트레비분수와 스페인광장으로 누구든 안내해줄 것이다. 나도 이곳에서 집에 돌아가려다 갑자기 인터넷이 먹통이 되는 바람에 길을 잃었다. 그러나 길을 잃은 덕분에 우연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원주’를 마주칠 수 있었다.
로마란 그런 곳이다. 길을 잘못 들어선 곳에 또 다른 유적지가 있고, 길 따라 가다보면 다시 새로운 길을 만나게 되는 곳.
내일은 또 새로운 길, 바티칸 시국으로 떠나는 날이다.
▶다음 편 : <바티칸 투어, 그리고 최악의 파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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